2026년 9월 중순, 우크라이나에 붙잡혀 있던 북한군 포로 2명이 본인 뜻에 따라 한국 땅을 밟았다. 정부는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며칠 뒤인 9월 23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뉴욕 유엔총회에서 이들의 한국행을 공개했다. 청와대는 유감을 표했고, 외교부는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대리를 불러 항의했다. 생포에서 입국까지 약 20개월, 입국에서 공개까지는 열흘 안팎이다. 이 짧은 열흘이 왜 외교 갈등이 됐는지 이해하려면 앞의 20개월을 날짜순으로 볼 필요가 있다.

이 글은 2025년 2월부터 2026년 9월 30일까지 나온 정부 발언과 보도를 날짜순으로 엮고, 제네바 제3협약 원문과 헌법 조항으로 이 송환이 어떤 근거로 가능했는지 정리했다. 포로의 신원과 이송 경로는 공개되지 않았고, 이 글도 다루지 않는다.

2025년 1월: 전장에서 붙잡힌 두 사람
출발점은 2025년 1월이다.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 가운데 2명이 우크라이나군에 생포됐다. 서울신문은 이들이 2025년 1월에 붙잡혔다고 전했다. 북한군 포로가 생긴 것은 처음이었고, 이들을 어디로 보내느냐는 질문도 이때 시작됐다.
포로가 된 순간 이들은 국제법의 보호를 받는다. 한국도 가입한 ‘포로의 대우에 관한 제네바협약’(제3협약, 한국 1966년 발효)은 포로를 붙잡은 나라, 곧 억류국이 포로의 대우를 책임지도록 한다. 북한은 러시아 쪽에서 싸운 나라이고, 한국은 이 전쟁의 당사자가 아니다. 이 구조가 이후 모든 판단의 바탕이 된다.
2025년 2월: 한 명이 한국행을 말하고, 정부는 원칙을 밝혔다
한 달 뒤 포로 가운데 한 명이 한국에 가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아주경제에 따르면 정부는 2025년 2월 19일 “북한군도 헌법상 우리 국민”이라며 한국행을 요청하면 “전원 수용”하는 것이 기본 원칙이라고 밝혔다. 북한군 포로가 한국행 의사를 밝힌 첫 사례였다.
정부가 근거로 든 것은 헌법 제3조다. 헌법은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정한다. 북한 지역도 대한민국의 영토이고, 그곳의 주민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해석이 여기서 나온다. 외교부는 같은 자리에서 포로의 얼굴이 언론에 공개된 데 우려를 나타내며, 포로를 인도적으로 대우하도록 한 제네바협약을 언급했다.
2026년 1월: 두 사람 모두 같은 뜻을 밝혔다
1년 가까이 큰 진전은 보이지 않았다. 경향신문은 2026년 1월 21일, 두 포로가 최근 인터뷰에서 모두 한국행 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2025년 2월에는 한 명만 뜻을 밝혔고 다른 한 명은 망설였다. 외교부는 이날 “한국행을 원하는 북한군 포로는 전원 수용한다”는 입장을 다시 확인하고, 우크라이나와 필요한 협의를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향신문은 이 시기 전문가들이 송환 문제가 평화 협상이나 러시아·우크라이나·미국이 얽힌 포로 교환 논의 속에서 풀릴 수 있다고 봤다고 전했다. 한국행 의사를 처음 밝힌 때부터 실제 입국까지는 19개월이 걸렸다. 지연의 정확한 이유는 공개되지 않았다.

● 구간별 기간 (보도된 날짜 기준)
생포 → 입국: 2025년 1월 → 2026년 9월 중순 = 약 20개월
첫 한국행 의사 표명 → 입국: 2025년 2월 → 2026년 9월 중순 = 약 19개월
입국 → 유엔 공개: 9월 중순 → 9월 23일 = 열흘 안팎 (입국일을 9월 15일로 가정하면 8일)
2026년 9월 중순: 조용한 입국
두 사람은 2026년 9월 중순 한국에 들어왔다. 정부는 발표하지 않았다. 9월 30일 파이낸셜뉴스에 따르면 국정원은 외교장관 통화와 대사관-우크라이나 외교부 협의 등 여러 채널로 비공개에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송환을 알리지 않는다는 데 양국이 뜻을 모았다는 것이다.
비공개의 이유에 대해 서울신문은 정부가 북한으로 돌아가면 가혹한 처벌을 받을 수 있는 포로를 강제로 송환하지 못하게 한 국제법의 취지에 따라 비밀을 유지했다고 전했다. 북한이 이 송환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응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알리지 않는 것 자체가 포로를 보호하는 수단이었다는 설명이다.
법적 근거: 전쟁 중인데 어떻게 제3국으로 갔나

제네바 제3협약 제118조는 “포로는 적극적 적대행위가 끝난 뒤 지체 없이 석방·송환한다”고 정한다. 송환의 원칙은 전쟁이 끝난 뒤의 일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이 조항에 따라 북한으로 돌려보내야 할 의무는 아직 생기지 않았다.
전쟁 중에 포로를 다른 나라로 넘기는 것은 제12조가 다룬다. 억류국은 협약을 적용할 의지와 능력이 있다고 확인한 협약 당사국에만 포로를 넘길 수 있다. 넘긴 뒤에는 받은 나라가 협약 적용의 책임을 진다. 한국은 협약 당사국이다. 우크라이나가 한국에 포로를 넘긴 것은 이 구조 안에서 설명된다.
본인 의사의 문제도 있다. 경향신문은 국제적십자위원회(ICRC)가 돌아가면 기본권이 위협받을 경우 송환하지 않는다는 ‘강제송환 금지’ 원칙을 포로에게도 적용하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고 전했다. 외교부도 2025년 2월 “개인의 자유의사 존중이 국제법과 관행에 부합하고, 본인 의사에 반해 박해받을 위협이 있는 곳으로 송환돼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자유의사 송환의 뿌리는 한반도에 있다
포로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돌려보내지 않는다는 생각은 낯설지 않다. 73년 전 한반도에서 이미 한 번 크게 다퉈진 문제이기 때문이다. 미국 국립문서보관소는 6·25전쟁 정전 협상에서 포로 송환을 둘러싼 이견이 협상을 2년 가까이 끌었다고 설명한다. 정전협정은 158차례 회의 끝에 서명됐다.
1953년 7월 27일 서명된 정전협정 제51항은 결론을 이렇게 적었다. 협정 발효 뒤 60일 안에 양측은 “송환을 고집하는” 포로를 직접 송환한다. 송환을 원하지 않는 포로는 스웨덴·스위스·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인도로 구성된 중립국송환위원회에 넘겼다. 위원회 규정은 “포로의 송환을 막거나 강요하기 위해 무력이나 무력의 위협을 써서는 안 된다”고 못 박았다.
1949년 제네바협약은 종전 뒤 송환을 원칙으로 정했지만, 한국전쟁을 거치며 본인 의사를 존중하는 관행이 함께 자리 잡았다. 2026년 북한군 포로의 한국행은 같은 한반도 출신 포로에게 그 원칙이 다시 적용된 사례이기도 하다.
2026년 9월 23일: 유엔에서 공개되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9월 23일(현지시간)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한군 포로 2명이 한국으로 갔다고 밝혔다. 입국 며칠 뒤였다. 제네바협약 제13조는 포로를 “폭력이나 위협, 모욕과 공중의 호기심으로부터” 언제나 보호하도록 정한다. 공개가 곧바로 협약 위반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포로의 신원과 행방이 세계에 알려지면 북한 내 가족의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진다. 비공개 합의가 있었다면 그 약속을 깬 것이기도 하다.
포로의 신원이 원치 않게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5년 2월 포로의 얼굴이 언론에 공개됐을 때도 외교부는 제네바협약을 들어 우려를 나타냈다. 1년 7개월 사이 두 번, 한국 정부는 같은 조항을 근거로 같은 문제를 제기한 셈이다. 포로를 보호하려는 쪽과 전쟁의 상황을 알리려는 쪽의 이해가 엇갈릴 때 무엇이 우선인지, 이번 일이 다시 묻고 있다.
우크라이나 안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서울신문은 우크라이나 야권 인사들이 이번 공개를 전쟁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붙잡으려는 정치적 ‘쇼’라고 비판했다고 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 쪽은 공개 이유를 따로 설명하지 않았다.
9월 24~30일: 유감, 항의, 그리고 혼선
이재명 대통령은 유감을 표했고, 외교부는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대리를 불러 항의했다. 국내 정치권의 반응은 갈렸다. 서울신문에 따르면 야당은 정부가 북한을 의식해 사실을 숨겼다고 비판했고, 여당은 비공개가 통상적인 절차라고 옹호했다.
9월 30일에는 정부 안에서도 혼선이 있었다. 국회 정보위원회 간사가 국정원 보고를 바탕으로 “정상 간 비공개 협의나 합의는 없었다”고 전하자, 국정원은 곧바로 자료를 내 외교장관 통화와 대사관 협의 등 여러 채널을 통한 비공개 합의는 있었다고 정정했다. 정상끼리 직접 합의한 것은 아니지만 정부 간 합의는 있었다는 뜻이다. 이 구분은 작지 않다. 정부 간 합의를 상대국 정상이 공개적으로 뒤집었다면 외교적 항의의 근거가 되지만, 합의 자체가 없었다면 항의의 무게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다음에 볼 것
외교부는 한국행을 요청한 포로에게 “관계 법령에 따라 필요한 보호와 지원”을 제공하겠다고 밝혀 왔다. 여기서 말하는 관계 법령의 중심은 북한이탈주민법이다. 이 법은 북한에 주소나 가족, 직장 등을 두고 있다가 북한을 벗어난 뒤 외국 국적을 얻지 않은 사람을 ‘북한이탈주민’으로 정의한다. 보호를 받으려면 재외공관이나 행정기관(군부대 포함)의 장에게 직접 신청해야 하고(제7조), 국가정보원장이 조사와 임시 보호를 한 뒤 통일부 장관에게 결과를 알린다. 두 사람이 이 절차를 어떻게 밟는지는 공개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지켜볼 것은 세 가지다. 우크라이나에 남은 다른 북한군 포로가 있는지, 있다면 같은 경로가 열리는지. 한국과 우크라이나 관계가 이번 갈등을 어떻게 수습하는지. 그리고 앞으로 비슷한 송환에서 비공개 원칙을 지키기 위한 장치가 마련되는지다.
이번 일은 국제법이 정한 틀 안에서 개인의 선택이 실현된 드문 사례이면서, 그 선택을 둘러싼 비밀이 얼마나 쉽게 깨질 수 있는지도 보여줬다. 한국행을 원하는 포로의 뜻을 존중하는 것과 그들의 안전을 지키는 것은 같은 일의 두 얼굴이다. 앞으로 비슷한 일이 생긴다면, 송환 자체만큼 그 뒤의 침묵을 어떻게 지킬지가 함께 협의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