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6일 아침 네팔 북부 라수와 지역을 덮친 홍수는 비 때문이 아니었다. 오전 8시 37분 직후, 해발 7,227m 랑탕 리룽의 북쪽 벽에서 거대한 암석과 빙하 덩어리가 떨어져 나갔다. 약 1,200m 아래 계곡으로 떨어진 덩어리는 흙과 돌, 물을 끌어들이며 ‘토석류(흙·돌·얼음이 섞인 진흙 물살)’가 됐다. 처음 22km를 평균 시속 약 190km로 내려왔다는 추정이 있다. 이 속도라면 15초에 800m 가까이 움직인다. 큰비가 없었으니 비를 보고 울리는 홍수 경보도 작동하지 않았다.

여행 유튜버가 10월 4일 올린 현장 영상은 “15초 만에 집이 사라졌다”는 제목으로 이틀 만에 조회수 171만 회를 넘겼다. 이 글은 히말라야 지역을 연구하는 국제기구 ICIMOD(국제산악종합개발센터)의 질의응답과 원인 분석 논문, 네팔 재난관리청 집계를 바탕으로 그날 일을 정리했다.
비가 아니라 산이 무너졌다

처음 보도된 ‘규모 4.4 지진’은 지진이 아니었다. ICIMOD에 따르면 산이 무너지며 생긴 땅의 흔들림이었다. 미국지질조사국(USGS)은 이 진동을 분석해 지각 운동이 아니라 거대한 덩어리가 움직인 에너지라고 결론 냈다. 미국과 독일의 지진계에는 규모 5 안팎으로 기록됐다. 약 3시간 뒤에는 더 작은 2차 붕괴도 감지됐다.
무너진 양은 수영장 수만 개 분량이다. 카트만두포스트는 위성 영상 업체 플래닛랩스의 사진을 인용해, 폭 약 600m의 빙하와 암석이 해발 5,200m에서 떨어져 나갔다고 전했다. ICIMOD의 빙하 전문가는 이 신문에 붕괴 규모를 1억~2억㎥로 설명했다. 올림픽 수영장 4만~8만 개를 채울 양이다. 원인 분석 논문은 흙과 돌까지 합쳐 1억 4,200만㎥ 넘게 움직였다고 적었다. 길이 50m·폭 25m·깊이 2m 수영장으로 치면 약 5만 6,800개다.
비는 거의 없었다. ICIMOD는 이를 “모든 분석이 동의하는 몇 안 되는 사실”로 꼽았다. 강수량과 수위 관측 어디에도 이만한 홍수를 설명할 비가 없었고, 옆 유역에 약한 비만 기록됐다. 홍수가 하늘이 아니라 산에서 왔기 때문에, 비를 기준으로 하는 홍수 경보는 울리지 않았다.
15초에 800m, 얼마나 빨랐나

속도는 측정 방법마다 달라 아직 하나로 정리되지 않았다. ICIMOD는 처음 20~25km 구간에서 물살 앞부분이 초속 수십 m로 움직였다고 소개했다. 한 추정으로는 처음 22km 평균이 시속 약 190km였다. 붕괴 지점 근처에서는 흙과 돌이 골짜기 벽을 400m 높이까지 타고 올라갔다.
● 직접 계산
- 시속 190km ÷ 3.6 = 초속 약 52.8m. 15초면 약 790m를 움직인다
- 이 속도로 22km를 내려오는 데는 약 7분이 걸린다
- 강폭이 넓어진 트리슐리 계곡에서는 초속 4~6m로 느려졌다. 그래도 15초에 60~90m다
처음 구간의 속도라면 15초는 마을 하나를 지나가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영상 제목의 ’15초’가 정확히 잰 시간은 아니겠지만 과장도 아니다. 느려진 트리슐리 계곡에서도 ICIMOD는 “사람이 달리는 평균 속도보다 빠르다”고 적었다. 물살을 본 뒤 뛰어서 피하기는 어려웠다는 뜻이다.
도착 기록으로 계산하면 초속 20m다. 국경 라수와가디에 오전 8시 40분, 56km 아래 베트라와티에 9시 20분에 물이 닿았다는 기록을 쓴 값이다. 다만 ICIMOD는 일부 과학자들이 좁은 물길에서 이 속도는 믿기 어렵다고 본다고 전했다. 목격 기록이 틀렸거나, 흙더미 앞의 공기 흐름이 먼저 닿았을 가능성도 함께 적었다.
국경 마을이 가장 크게 다친 이유는 지형이다

토석류는 처음 만난 평평한 땅에 가장 많이 쌓였다. ICIMOD에 따르면 렌데 계곡의 물은 해발 5,000m 넘는 곳에서 국경 근처 1,800m까지 급하게 떨어진다. 그리고 라수와가디에서 처음으로 비교적 평평한 강바닥을 만난다. 토석류는 강이 합쳐지는 곳에서 느려지면서 가장 무거운 흙과 돌을 쏟아 놓는다. 하필 그 평평한 땅에 우정의 다리, 세관, 화물 터미널, 트럭 주차장, 수력발전 시설이 모여 있었다. ICIMOD는 2021년 인도 차몰리에서도 같은 과정으로 강이 합쳐지는 곳이 30m 두께의 흙더미에 묻혔다고 적었다. 발전소 터널 안에 있던 사람들이 크게 다친 것도 그때와 비슷하다고 했다.
피해자 가운데 외지인이 많았던 것도 같은 이유다. 8~9월은 인도의 힌두교 순례객이 티베트 카일라스산으로 가는 시기라 국경을 지나는 사람이 많았다. 트리슐리강을 따라 줄지은 수력발전소에서는 외국인을 포함한 많은 노동자가 강가나 터널 안에서 일하고 있었다. ICIMOD는 이들이 지형을 잘 모르고, 네팔어로 나간 경보를 이해하기 어려웠을 수 있다고 짚었다.
인명 피해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네팔 재난관리청(NDRRMA)이 8월 31일 오전 9시에 낸 잠정 집계를 NESRA 홍수 관측 페이지가 정리했다. 시신과 유해 903구가 수습됐고, 약 4,247명(외국인 592명 포함)의 행방이 확인되지 않았으며, 10,451명이 구조됐다. 수력발전소 11곳에서만 약 933명의 행방이 확인되지 않았다. 이 페이지는 수습된 시신 수가 최종 사망자 수와 같지 않고, 행방불명이 사망 확정을 뜻하지도 않는다고 거듭 밝혔다.
피해는 수백 km 하류까지 이어졌다. 카트만두포스트는 네팔 경찰을 인용해, 시신이 누와코트와 다딩은 물론 치트완, 고르카, 타나훈, 동·서 나왈파라시에서도 발견됐다고 전했다. 트리슐리강과 나라야니강을 따라 물살이 내려간 길을 그대로 보여 준다. NESRA 페이지는 네팔 전체 발전 설비의 약 10%가 영향을 받았다고 정리했다. 트리슐리강 물길에 수력발전소가 줄지어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 풀리지 않은 질문: 강이 19시간 막혀 있었나
ICIMOD가 꼽은 “가장 중요한 미해결 질문”은 붕괴 시각이다. 산이 정말 8월 26일 오전 8시 37분에 한꺼번에 무너졌느냐는 것이다. 미국지질조사국과 ICIMOD를 비롯한 대부분의 분석은 8시 37분의 진동을 붕괴 그 자체로 본다. 렌데 계곡이 아주 잠깐 막혔다가 터졌을 수 있다는 해석이다.
네팔의 젊은 연구자 그룹은 다르게 읽는다. 8월 25일과 26일 위성 영상을 보면 붕괴는 이미 25일 오후에 있었다는 것이다. 무너진 흙더미가 강을 18~19시간 막고 있다가 26일 아침 둑처럼 터진 것이 8시 37분의 사건이라는 주장이다. 다만 국경 라수와가디의 수위계는 부서지기 전까지 물이 불어난 기록이 없었다고 한다.
어느 쪽이 맞느냐에 따라 ‘막을 수 있었나’가 갈린다. 강이 19시간 동안 막혀 물이 차오르고 있었다면 경보를 낼 수 있었던 시간이 있었던 셈이다. 반대로 한순간에 무너졌다면 미리 알 방법이 거의 없었다. ICIMOD는 지진파 분석과 구름 없는 위성 영상이 쌓이면 답이 더 분명해질 것이라고 적었다.
1년 전 같은 계곡 홍수와는 원인이 다르다

이 계곡은 1년 전에도 홍수를 겪었다. 2025년 7월 8일, 국경 북쪽 약 36km 티베트의 푸레푸 빙하 위에 생긴 호수가 갑자기 터지며 같은 물길로 물이 쏟아졌다. 이때 우정의 다리가 무너지고 30명이 숨지거나 실종됐다. 빙하 호수가 터지는 이런 홍수를 ‘GLOF’라고 부른다.
두 홍수의 차이는 ‘미리 찾을 수 있느냐’다. ICIMOD는 호수는 원칙적으로 미리 찾아 목록을 만들고 지켜볼 수 있지만,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암벽은 훨씬 추적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히말라야 일대에는 빙하가 약 5만 4천 개, 빙하 호수가 2천 개 넘게 있다. 모든 비탈에 경보 장치를 다는 것은 한 세대가 걸릴 일이라고 ICIMOD는 적었다. 부탄이 계곡 하나에 경보 체계를 갖추는 데 약 800만 달러가 들었다고 한다.
기후변화 때문인지는 아직 단정할 수 없다
붕괴 전 몇 주는 기록적으로 덥고 눈이 적었다. 원인을 분석한 사전공개 논문은 붕괴 시각 전후 강수량은 무시할 만큼 적었다고 적었다. 7~8월 영상의 기온이 쌓인 정도는 1979~2025년 기록 가운데 상위 2% 수준(98번째 백분위)이었다. 반면 최근 내린 눈과 8월에 쌓여 있던 눈은 크게 부족했다. 연구진은 극심한 더위와 눈 가뭄이 겹쳐 비탈이 무너지기 쉬운 상태가 됐다고 봤다.
2015년 대지진의 영향일 가능성도 있다. 랑탕 리룽은 2015년 고르카 대지진 때도 무너져 아래 랑탕 마을을 덮쳤고, 약 350명이 목숨을 잃은 산이다. 강한 흔들림은 바위와 얼음에 금을 내고, 그 금은 몇 년 뒤에야 무너질 수 있다. ICIMOD는 이번에도 그 영향이 있었을 “가능성은 있지만 확실히 검증할 수는 없다”고 적었다.
연구진도 ICIMOD도 기후변화 탓이라고 단정하지 않았다. 논문은 무엇이 붕괴를 직접 일으켰는지는 밝히지 못했다고 적었다. 또 아직 학술지의 동료 심사를 거치지 않은 사전공개본이다. 지금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비를 보고 울리는 경보만으로는 이런 홍수를 막을 수 없다”는 점이다.
● 히말라야 여행이나 트레킹을 계획한다면
- 강가의 평평한 땅이나 두 물줄기가 합쳐지는 곳은 토석류가 멈추며 쌓이는 자리일 수 있다. 숙소와 쉴 곳은 강보다 높은 곳으로 고른다.
- 현지 경보는 네팔어로만 나올 수 있다. 현지 가이드와 연락 수단을 정해 두고, 이상한 굉음이나 진동이 있으면 바로 높은 곳으로 피한다.
- 비가 오지 않는 날에도 산사태와 홍수는 일어날 수 있다. 출발 전 현지 당국의 공지를 확인한다.
이번 홍수는 “비가 안 오니 괜찮다”는 생각이 산에서는 통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줬다. ICIMOD는 수력발전소와 도로, 마을 위에 있는 비탈부터 순위를 매겨 경보 장치를 다는 것이 현실적인 길이라고 제안했다. 앞으로 지켜볼 숫자는 확정 사망자 수, 그리고 이 계곡에 실제로 비탈 감시 장치가 생기는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