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유가 러시아로? 제재 위반인지 통제 목록과 통계로 따져봤다

한국에서 실린 경유가 러시아로 갔더라도, 그것만으로는 한국의 대러 제재 위반이 아니다. 경유는 한국이 러시아 수출을 막는 1,402개 품목에 들어 있지 않다. 고시 원문을 HS 코드로 훑어보니 석유류가 속한 27류는 한 품목도 없었다. 그렇다고 의혹이 다 풀린 것은 아니다. 영국과 유럽연합(EU)이 제재한 유조선이 쓰였는지, 실린 연료가 정말 한국산인지는 정부가 아직 확인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한국이 제재를 피한다”는 주장은 사실과 거리가 있고, 경유 운송의 세부 사실은 판단을 미룰 단계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항의 부두. 컨테이너가 쌓인 부두에 크레인 두 대가 서 있고, 녹색 화물선이 정박해 있으며 뒤로 언덕과 사장교가 보인다
러시아 극동의 블라디보스토크항(2021년 7월). 가디언은 한국에서 연료를 실은 유조선들이 이곳 등 러시아 극동 항구로 향했다고 보도했다. — 사진: taras.rynza, CC BY-SA 2.0, 위키미디어 공용

논란은 10월 6일 영국 가디언의 조사 보도에서 시작됐다. 다음 날 우크라이나 정부가 한국을 비판했고, 이 소식을 전한 MBC뉴스 쇼츠는 사흘 만에 148만 회 조회됐다. 10월 8일 한국 정부는 주우크라이나 대사를 본국으로 불러들였다. 파이낸셜뉴스에 따르면 외교 마찰로 주요국 대사를 소환한 것은 2008년 7월 독도 문제로 주일대사를 부른 뒤 18년 만이다. 두 나라는 9월 북한군 포로 송환 공개 문제로 이미 갈등을 빚고 있었다. 이 글은 2026년 10월 10일까지 나온 자료로 주장을 하나씩 따졌다.

한국 경유 러시아행 논란의 다섯 가지 주장과 판정. 한국이 대러 제재에 동참하지 않는다는 사실 아님, 경유 선적이 제재 위반이라는 대체로 사실 아님, 나머지 세 가지는 판단 유보
그림 1. 주장별 판정(2026년 10월 10일 기준) — 자료: 산업통상부 전략물자 수출입고시, UN Comtrade, 외교부, Kyiv Post·UNITED24·NV 보도

판정대체로 사실 아님

“한국이 경유를 팔아 대러 제재를 어겼다”는 주장은 대체로 사실이 아니다. 경유는 한국의 대러 수출통제 품목이 아니고, 한국의 대러 수출은 2021년보다 59.5% 줄었다. 다만 제재 대상 유조선이 쓰였는지와 연료의 원산지는 정부가 확인 중이어서, 그 부분은 판단을 미룬다.

가디언이 보도한 것: 두 달, 7척, 17.6만 톤

먼저 무엇이 보도됐는지 정리한다. 가디언 원문은 이 블로그가 직접 열 수 없어, 이를 인용한 UNITED24와 Kyiv Post(AFP) 보도로 수치를 맞춰 봤다. 두 매체가 전한 수치는 서로 같았다.

가디언은 항만 기록과 선박 추적 자료를 근거로 들었다. 2026년 7~8월 유조선 7척이 한국 항구에서 러시아 극동으로 14번 오갔고, 실린 연료는 17만 6천 톤이 넘으며 대부분 경유였다. 7척 가운데 3척은 영국과 EU의 제재 대상이라고 했다. 예를 들어 ‘라일라(Layla)’호는 울산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두 번에 걸쳐 경유 약 5만 7천 톤을 날랐다. 두 번째 출항 때는 목적지를 일본 니가타로 신고했다. ‘청천(Chongchon)’호는 여수 앞바다에서 다른 배로부터 약 2만 6천 톤을 옮겨 실은 뒤, 싱가포르로 신고하고 블라디보스토크로 갔다.

배경도 있다. 우크라이나는 드론으로 러시아 정유시설을 잇따라 공격해 왔다. 러시아는 기름을 직접 만들기 어려워지자 수입을 늘렸다. UNITED24가 전한 선박 분석업체 케이플러(Kpler) 자료를 보면, 러시아의 8월 해상 석유제품 수입은 36만 8천 톤으로 7월의 7배가 넘었다. 이 가운데 한국에서 온 것이 약 11만 2천 톤(31%)으로 인도 다음으로 많았다. 우크라이나가 “한국이 우리 작전을 망쳤다”고 반발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판정 1: 경유는 한국의 대러 통제 품목이 아니다

핵심 질문은 경유 수출이 한국 법으로 금지돼 있느냐다. 한국의 대러 수출통제는 산업통상부의 전략물자 수출입고시에 들어 있다. 2026년 9월 1일 시행된 현행 고시의 별표 2의2는 러시아·벨라루스에 수출할 때 허가를 받아야 하는 ‘상황허가 대상품목’을 1번부터 1,402번까지 나열한다. 별표 24는 이 품목의 러시아행 허가 신청을 원칙적으로 거부하도록 했다. 선박·항공기 안전, 민간 원자력 안전, 의약품·식료품 같은 인도적 지원 등만 예외다.

‘상황허가’라는 말이 낯설 수 있다. 근거는 대외무역법 제19조의3이다. 무기 부품처럼 처음부터 통제되는 ‘전략물자’는 아니지만, 무기를 만들거나 쓰는 데 전용될 우려가 큰 물품을 수출할 때 받는 허가다. 이 조항은 국제정세가 바뀌어 장관이 고시하는 경우에도 이 허가를 받게 할 수 있도록 했다. 같은 법 제19조의4는 이런 물품을 국내 항구에서 옮겨 싣기만 해도 허가를 받게 한다. 거꾸로 말하면 목록에 없는 물품은 수출이든 환적이든 이 허가가 필요 없다.

이 목록을 직접 훑었다. 별표의 일반해설은 HS 코드가 적힌 품목은 그 코드로만 판단한다고 정한다. 그래서 목록에 적힌 HS 코드의 앞 두 자리, 곧 ‘류’를 모두 모았다. 25류(광물), 28류(화학품), 84류(기계), 85류(전기기기), 90류(광학·정밀기기) 등이 나왔다. 경유·휘발유 같은 석유제품이 속한 27류는 한 품목도 없었다. 목록에 ‘Petroleum’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곳은 34류의 조제 윤활유 항목 설명뿐이었다.

한국 정부의 설명도 같다. Kyiv Post가 전한 AFP 보도에 따르면 외교부는 10월 8일 “가디언 보도에 나온 상업용 경유와 항공유 등 정제 석유제품은 한국의 대러 수출통제 대상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UNITED24도 가디언이 이 선적 자체는 한국 법 위반이 아니라고 짚었다고 전했다. 경유를 실어 보낸 것만으로 한국 법을 어겼다고 볼 근거는 없다.

다만 ‘대체로’라는 단서를 붙인다. 제재 대상 선박을 쓴 부분은 다른 문제일 수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선박 경로를 추가로 확인하고, 법령 위반이 확인되면 필요한 조치를 하겠다고 했다. 이 글은 영국과 EU가 지정한 선박 명단을 직접 대조하지 못했다. EU와 미국이 러시아행 경유 수출을 어떻게 규율하는지도 원문으로 확인하지 못해 다루지 않는다.

판정 2: ‘제재에 동참하지 않는다’는 숫자와 맞지 않는다

한국의 대러시아 수출 총액이 2021년 99.8억 달러에서 2022년 63.3억, 2023년 61.2억, 2024년 45.2억, 2025년 40.4억 달러로 줄어든 막대그래프
그림 2. 한국의 대러시아 수출 총액(2021~2025) — 자료: UN Comtrade, 2026년 10월 10일 조회

우크라이나 측은 한국이 대러 제재에 동참하지 않는다고 했다. NV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외교부 대변인은 외교 채널로 얻은 정보가 한국 연료의 러시아 공급을 확인해 준다고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보좌관은 한국의 제재 정책과 “극명하게 대조된다”고 말했다.

숫자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 유엔 무역통계 UN Comtrade에서 한국이 보고한 대러 수출을 연도별로 뽑았다. 전쟁 전인 2021년 99억 8천만 달러에서 2025년 40억 4천만 달러로 줄었다. 외교부가 말한 “절반 넘게 줄었다”는 설명과 맞는다.

● 직접 계산

대러 수출 감소율: (99.80 − 40.41) ÷ 99.80 = 59.5%
2025년 대러 수출은 2021년의 약 10분의 4 수준이다.

물론 수출이 줄었다고 모든 문제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통제 목록 밖의 품목은 지금도 합법적으로 러시아에 팔린다. 그래도 1,402개 품목을 통제하고, 그 허가를 원칙적으로 거부하는 나라를 두고 “제재에 동참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판정 3: 두 달 치 17.6만 톤은 예년과 달랐다

한국의 대러시아 석유제품 수출 물량이 2021년 9만 9천 톤에서 2025년 5만 9천 톤 사이였는데, 2026년 7~8월 보도 물량은 17만 6천 톤 이상으로 크게 높은 막대그래프
그림 3. 한국의 대러 석유제품(HS 2710) 수출 물량과 이번 보도 물량 — 자료: UN Comtrade(2021~2025), 가디언 조사(UNITED24·Kyiv Post 재인용)

석유제품은 통제 대상이 아니라서 전쟁 뒤에도 꾸준히 러시아로 수출됐다. Comtrade 기준 한국의 대러 석유제품(HS 2710) 수출은 2021년 9만 9천 톤, 2023년 8만 1천 톤, 2025년 5만 9천 톤이었다. 그런데 가디언이 보도한 물량은 7~8월 두 달에만 17만 6천 톤이 넘는다.

● 직접 계산

2026년 7~8월 보도 물량 ÷ 2025년 연간 대러 석유제품 수출
= 176,000톤 ÷ 58,754톤 = 약 3.0배
2025년 대러 석유제품 톤당 단가: 2억 1,008만 달러 ÷ 58,657톤(HS 271019) = 약 3,580달러
2025년 한국 전체 같은 품목 수출 단가: 320억 달러 ÷ 4,627만 톤 = 약 692달러

단가 차이도 눈여겨볼 만하다. 2025년 러시아로 간 석유제품은 톤당 약 3,580달러로, 한국의 같은 품목 전체 평균의 5배가 넘었다. 같은 HS 코드에는 경유뿐 아니라 값비싼 윤활유도 들어간다. 그래서 지난해까지는 대량의 연료보다 고가 제품이 주로 갔을 가능성이 크다. 세부 품목은 확인하지 못했다. 이 추정이 맞다면 7~8월의 대량 경유 운송은 예년의 흐름과 성격이 다르다.

여기서 판단을 미루는 이유가 있다. 17.6만 톤은 ‘한국 항구에서 실린’ 물량이지, ‘한국에서 정제된’ 물량이라고 확인된 것이 아니다. 청천호처럼 바다 위에서 다른 배로부터 옮겨 실은 경우는 원래 화물의 출처를 따로 따져야 한다. 외교부는 한국산 연료가 러시아로 수출됐는지 “확인되지 않았다”고 했다. 2026년 7~8월 월별 무역통계도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통계가 나오면 이 물량이 한국의 수출 신고에 잡혔는지 대조할 수 있다.

판정 4: ‘한국도 인정했다’는 주장은 엇갈린다

우크라이나 외교부 대변인은 “한국 측도 이 사실을 인정했다”고 말했다고 NV는 전했다. 한국 외교부의 공식 발언은 반대다. 한국산 연료의 수출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고, 우크라이나의 발언은 “사실과 다르고 부적절하다”고 했다. 파이낸셜뉴스에 따르면 외교부 당국자는 거래 주체나 원산지, 최종 구매자 같은 핵심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개별 거래를 근거로 공개 비판한 것이 부적절하다고 했다.

비공개 외교 대화에서 무엇이 오갔는지는 밖에서 확인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이 주장은 판단 유보다. 다만 이번 갈등이 경유 문제만으로 커진 것은 아니다. 9월 23일 젤렌스키 대통령이 북한군 포로 2명의 한국행을 유엔에서 공개했고, 한국 정부는 9월 28일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대리를 불러 항의했다. 그 앙금이 남은 상태에서 경유 비판이 나왔고, 대사 소환으로 이어졌다.

앞으로 확인할 세 가지

첫째, 정부의 선박 조사 결과다. 영국·EU 제재 유조선이 한국 항구에서 기름을 실었다면 항만 이용이나 선박 간 환적에 한국 법상 문제가 없었는지가 쟁점이다. 외교부는 문제가 확인되면 조치하겠다고 했다. 둘째, 7~8월 무역통계다. 한국의 대러 석유제품 수출이 그 달에 실제로 늘었는지는 통계가 나오면 숫자로 확인된다. 셋째, 석유제품을 통제 목록에 넣을지 여부다. 지금 목록은 기계, 전자, 화학 소재 위주다. 우크라이나의 요구가 이 목록을 바꿀지가 다음 관전 포인트다.

이 사안은 빠르게 바뀌고 있다. 이 글의 판정은 2026년 10월 10일까지 공개된 자료를 기준으로 했고, 정부 조사 결과가 나오면 바뀔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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