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를 맞추려다 램 가격을 보고 멈칫한 사람이 많다. “32GB 램으로 컴퓨터를 맞춰?”라는 영상 제목이 농담이 아니게 됐다. 한국은행이 매달 내는 D램 수출물가지수를 달러 기준으로 따라가 보면 그 이유가 숫자로 보인다. 2023년 8월 49.5였던 지수가 2026년 8월 282.8이 됐다. 3년 만에 5.7배, 1년 전과 비교해도 3.5배다. 오름세는 고르지 않았다. 2025년 10월, 2026년 1월과 4월에 계단처럼 뛰었고, 최근 석 달은 한 자릿수로 둔해졌다. 다만 9월 시장 거래가는 여전히 사상 최고를 다시 썼고, 4분기에도 오른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 글은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의 D램 수출물가지수 월별 원자료, 산업통상부의 8월 수출입동향, 그리고 시장 거래가 보도를 날짜순으로 엮어 램값이 오른 길을 다시 그렸다.
● 수출물가지수란
한국 기업이 해외에 파는 물건의 가격 변화를 2020년을 100으로 놓고 잰 지수다. D램 항목은 한국에서 수출되는 D램 전체의 평균 가격 흐름이라, 서버용과 모바일용이 함께 들어간다. 원화 환율의 영향을 빼려고 이 글에서는 달러 기준 지수를 썼다. 우리가 가게에서 사는 램 소매가와는 다르지만, 소매가의 원가가 되는 반도체 가격의 방향을 가장 공식적으로 보여주는 자료다.
2023년 여름, 바닥은 49.5였다

지금의 급등을 이해하려면 출발점부터 봐야 한다. 2023년 1월 61.8이던 지수는 그해 7~9월 49.5까지 내려갔다. 2020년 수준의 절반이고, 반년 새 20% 떨어진 값이다. 메모리 반도체가 남아돌던 시기다. 이때 램을 산 사람들은 지금 돌아보면 가장 싸게 산 셈이다.
2024년에 첫 반등이 왔다. 1월 63.4에서 7월 78.0까지 올랐다. 하지만 이 흐름은 이어지지 않았다. 2025년 2월 70.7까지 다시 내려갔고, 상반기 내내 70대에 머물렀다. 2025년 여름까지만 해도 램값은 ‘조금 비싸진’ 정도였다.
2025년 10월부터 계단이 시작됐다
변화는 2025년 가을에 왔다. 8월 81.0, 9월 83.2로 완만하던 지수가 10월 97.3으로 한 달 만에 17% 뛰었다. 11월에도 12% 더 올라 109.0이 됐다. 두 달 새 31% 오른 것이다.

가장 큰 계단은 2026년 1월이었다. 지수가 111.2에서 147.4로 한 달 새 32.6% 올랐다. 2월에 6.9%로 숨을 고른 뒤 3월 18.8%, 4월 24.9%가 또 이어졌다. 4월 지수 233.8은 1년 전(2025년 4월 72.4)의 3배가 넘었다.
이 계단의 배경으로 업계와 보도가 꼽는 것은 AI다. 이데일리가 전한 시장조사업체 분석에 따르면 클라우드 기업들이 서버용 D램을 추가로 사들였고, 메모리 회사들이 AI 칩에 붙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생산을 늘리면서 일반 D램에 쓸 생산능력이 줄었다. 같은 공장, 같은 웨이퍼를 더 비싼 제품에 쓰니 PC용 램은 뒤로 밀린 것이다.

수출 숫자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2026년 8월 반도체 수출은 467억 달러로 1년 전보다 209% 늘어 역대 최대였고, 석 달 연속 400억 달러를 넘었다. 산업통상부는 대형 정보기술 기업들의 투자 확대를 이유로 들었다.
2026년 여름, 속도는 줄었지만 값은 최고

5월 이후로는 오름폭이 줄었다. 5월 7.4%, 6월 0.6%, 7월 8.7%, 8월 2.9%다. 1~4월 넉 달 동안 지수가 두 배 넘게 오른 것과 비교하면 확실히 숨이 고르다. 1월과 4월 같은 큰 계단은 없었다. 그래도 8월 지수 282.8은 1년 전(81.0)의 3.5배이고, 한 번도 내려온 적이 없다. 값이 내려가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높은 곳에서 오르는 속도만 느려진 상태다.
시장 거래가도 같은 그림이다. 국민일보가 전한 D램익스체인지 집계로 PC용 범용 D램(DDR4 8Gb)의 9월 평균 고정거래가격은 26달러로, 8월 25달러에서 4% 올라 사상 최고를 다시 썼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4분기 PC용 D램 가격 상승률 전망을 기존 3~8%에서 13~18%로 크게 올렸다. 업계는 아직 꼭대기를 보지 않고 있다.
● 수출물가지수로 계산한 상승 폭 (달러 기준)
2026년 8월 ÷ 2023년 8월 = 282.77 ÷ 49.51 = 5.7배
2026년 8월 ÷ 2025년 8월 = 282.77 ÷ 80.98 = 3.5배 (+249%)
2026년 4월 ÷ 2025년 4월 = 233.82 ÷ 72.36 = 3.2배
원화로 보면 사정이 조금 다르다. 같은 8월 원화 기준 지수는 336.6으로 달러 기준(282.8)보다 높다. 2020년보다 원화가 약해진 만큼 원화로 사는 사람에게는 오름폭이 더 크게 다가온다. 다만 8월에는 환율이 내려가면서 원화 기준 D램 수출물가가 전월보다 떨어지기도 했다. 환율이 램값 체감에 한 번 더 얹히는 셈이다.
소비자가 사는 컴퓨터는 1년 새 24% 올랐다
반도체 값이 3.5배가 됐다고 PC 값도 3.5배가 되지는 않는다. 램은 PC를 이루는 부품 가운데 하나이고, 제조사와 유통사가 재고와 마진으로 부담을 나눠 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소비자가 실제로 느끼는 값은 얼마나 올랐을까. 국가 공식 통계인 소비자물가지수(한국은행 통계시스템에도 실린다)에서 ‘컴퓨터’와 ‘저장장치’ 품목을 찾아 같은 기간을 비교했다.

컴퓨터 소비자물가지수(2020=100)는 2025년 8월 94.0에서 2026년 8월 116.3으로 23.7% 올랐다. 저장장치(SSD, 외장 저장장치 등)는 144.3에서 211.8로 46.8% 올랐다. 반도체 수출가격의 249% 상승과 비교하면 소비자 가격에는 일부만 넘어온 셈이다.
넘어온 시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컴퓨터 소비자물가는 2025년 내내 90~95 사이에 머물다 2026년 2월 한 달 만에 6.9% 뛰었고(95.4 → 102.0), 4월에 다시 7.0% 올랐다(104.4 → 111.7). D램 수출가격이 크게 뛴 1월과 3~4월 직후다. 저장장치는 1월 10.9%, 2월 7.8%, 3월 14.0%가 연달아 올랐다. 원가 상승이 한두 달 시차를 두고 매장 가격표로 옮겨 온 흐름이 보인다.
저장장치가 컴퓨터보다 더 많이 오른 데는 낸드플래시의 영향도 있다. SSD에 들어가는 낸드는 D램과 다른 메모리지만 같은 회사들이 만든다. 국민일보가 전한 집계로 범용 낸드(128Gb MLC)의 9월 고정거래가는 30.6달러로, 2025년 1월부터 21개월 연속 올랐다. D램처럼 한 번에 크게 뛰지는 않았지만 쉬지 않고 오른 것이다. 저장장치는 부품 자체가 거의 메모리라서 원가 상승이 완제품 가격에 더 직접 반영된다.
● 소비자물가로 본 1년 새 상승률 (2025년 8월 → 2026년 8월)
컴퓨터: 116.31 ÷ 94.04 = 1.237 → +23.7%
저장장치: 211.80 ÷ 144.27 = 1.468 → +46.8%
D램 수출가격(달러): 282.77 ÷ 80.98 = 3.492 → +249.2%
이 차이는 앞으로의 가격에 두 가지를 시사한다. 하나는 아직 넘어오지 않은 원가가 남아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제조사가 버티던 몫이 다음 제품 가격이나 사양 조정으로 나타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반대 방향의 시차다. 반도체 값이 꺾이더라도 소비자 가격은 몇 달 늦게 따라 내려올 가능성이 크다.
이 흐름이 PC 사용자에게 의미하는 것
완제품 가격에도 압박이 왔다. 머니투데이는 D램 원가가 오르는데 노트북 값을 그만큼 올리기 어려운 삼성전자와 LG전자가 119만~145만 원대 보급형 제품을 내놓고 구독 판매를 늘리고 있다고 전했다. 사양을 낮춘 제품과 할부·구독으로 체감 가격을 맞추는 방식이다. 같은 값에 담기는 램 용량이 줄어드는 일이 생길 수 있다는 뜻이다.
업그레이드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세 가지를 따져 볼 만하다. 첫째, 지금 쓰는 램이 실제로 부족한지다. 작업 관리자의 메모리 사용률이 늘 80~90%를 넘는다면 업그레이드의 효과가 크지만, 그렇지 않다면 서두를 이유가 약하다. 둘째, 기다림의 근거다. 수출물가 상승 속도는 둔해졌지만 시장 전망은 4분기에도 오른다는 쪽이라, 몇 달 기다리면 싸진다고 볼 근거는 아직 공식 통계에 없다. 셋째, 규격이다. DDR4와 DDR5는 서로 호환되지 않아, 메인보드가 지원하는 규격 안에서만 고를 수 있다. 시장 지표로 자주 인용되는 ‘DDR4 8Gb’ 고정가는 이전 세대 규격이라 최신 DDR5 램의 값과 똑같이 움직이지는 않는다. 다만 생산능력이 서버용으로 쏠리는 구조는 두 규격에 함께 작용해, 방향은 같다고 보는 편이 무리가 없다.
이 글은 가격 흐름을 정리한 것이지 구매 시점을 권하는 것은 아니다. 메모리 가격은 공급과 수요가 몇 달 만에 뒤집히는 시장이다. 2023년의 바닥도, 2025년 가을의 급등도 미리 정확히 맞힌 사람은 드물었다. 2024년의 첫 반등이 반년 만에 멈췄던 것처럼, 오름세가 이어질지 꺾일지는 서버 투자와 생산능력 배분이라는 바깥 변수에 달려 있다. 그래서 가격 예측보다 내 PC가 지금 정말 램이 부족한지를 먼저 확인하는 것이 손해를 줄이는 쪽이다.
앞으로 볼 숫자
다음에 볼 숫자는 두 가지다. 하나는 한국은행이 매달 중순 발표하는 수출입물가지수의 D램 항목이다. 9월분이 10월 중순에 나오면 5월 이후의 둔화가 이어지는지, 다시 계단이 생기는지 알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매달 말 집계되는 PC용 D램 고정거래가격이다. 트렌드포스 전망대로 4분기에 13~18% 오른다면 지금의 26달러는 연말에 29~31달러대가 된다. 두 숫자가 함께 꺾이는 달이 오면, 그때가 3년 만에 램값의 방향이 바뀌는 신호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