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왕” 3,938억 완납 계획, 고액체납자 명단을 숫자로 읽으면

‘선박왕’으로 불린 권혁 시도그룹 회장의 개인 체납액 3,938억 원은 2025년 새로 공개된 개인 고액·상습체납자 6,848명 전체 체납액의 9.7%다. 한 사람이 열 번째 몫 가까이를 차지한다. 국세청은 10월 7일, 2011년 종합소득세 고지 뒤 15년 동안 밀린 이 돈을 권 회장이 모두 내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지난 7월 현금 1,000억 원을 냈고, 나머지는 해외 선박을 담보로 맡겼다. 국세청은 이렇게 많은 체납 세금을 낸 것은 국세청 역사상 처음이라고 했다.

파란 하늘 아래 바다를 지나는 대형 자동차운반선 그랜드 이글호. 위쪽은 상자 모양의 베이지색 선체, 아래쪽은 파란색 선체이고 뱃머리에 배 이름이 적혀 있다
2015년 11월 호주 프리맨틀항에 들어오는 자동차운반선 그랜드 이글호. 사진 설명에는 선박 관리회사가 시도해운 홍콩(CIDO Shipping HK)으로 적혀 있다. 이 배가 이번 담보 선박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 사진: Andrew Priest, CC BY 2.0, 위키미디어 공용

이 글은 국세청의 10월 7일 보도자료와 2025년 명단 공개 보도참고자료 원문, 국세징수법을 2026년 10월 10일에 확인해 계산했다. 3,938억 원이 얼마나 큰 숫자인지, 그리고 고액·상습체납자 명단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숫자로 따라간다.

3,938억 원은 얼마나 큰가

권혁 회장 개인 체납액 3,938억 원을 다른 숫자와 비교한 여섯 개의 카드. 2025년 개인 공개 체납액의 9.7%, 100억 원 이상 21명 체납액의 50.8%, 공개 기준 2억 원의 1,969배, 15년, 현금 납부 1,000억 원, 장부상 체납액 7,902억 원
그림 1. 3,938억 원을 다른 숫자와 견주면 — 자료: 국세청 보도자료(2026.10.7), 보도참고자료(2025.12.12), 비율은 직접 계산

국세청은 2025년 12월 12일 고액·상습체납자 명단을 새로 공개했다. 개인 6,848명이 4조 661억 원, 법인 4,161곳이 3조 1,154억 원으로 모두 1만 1,009명(곳), 7조 1,815억 원이었다. 개인 가운데 체납액 1위가 권 회장이었다.

● 직접 계산

3,938억 ÷ 4조 661억(2025년 새로 공개된 개인 체납액) = 9.7%
3,938억 ÷ 7조 1,815억(개인·법인 전체) = 5.5%
3,938억 ÷ 7,759억(체납액 100억 원 이상 개인 21명) = 50.8%
3,938억 ÷ 2억(명단 공개 기준) = 1,969배

100억 원이 넘는 체납자 21명의 체납액을 모두 합쳐도, 그 절반이 권 회장 한 사람 몫이다. 법인 명단에도 이름이 있다. 2025년 법인 체납액 1~3위인 시도 계열 세 법인(2,132억·1,537억·1,534억 원)의 대표자가 모두 권 회장으로 공개됐다.

국세청은 권 회장 본인의 체납액에, 관련 법인들이 대신 낼 의무를 진 ‘제2차 납세의무’ 체납지정액까지 합치면 장부상 체납액이 7,902억 원이라고 밝혔다. 계획대로 납부가 이뤄지거나 담보를 강제징수하면 약 8천억 원의 체납액이 사라진다고 했다. 권 회장이 낼 돈은 3,938억 원이고, 그만큼을 내면 법인에 걸린 제2차 납세의무 체납액도 함께 정리된다는 뜻이다.

납부는 어디까지 왔나: 현금 25%, 나머지는 선박 담보

● 직접 계산

현금 납부: 1,000억 ÷ 3,938억 = 25.4%
남은 금액: 3,938억 − 1,000억 = 2,938억 원(담보 제공, 평가 중)

아직 ‘완납’은 아니다. 국세청 표현도 ‘완납할 계획’이다. 남은 2,938억 원은 납부계획을 내고 선박을 담보로 맡긴 상태다. 국세청은 납세자 명의의 국내 재산이 없어 해외에 있는 선박을 담보로 받은 첫 사례라며, 감사원 사전컨설팅을 함께 받고 담보물이 적정한지 평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신문에 따르면 담보는 해외 선박 5척이고, 국세청은 선박 가치가 남은 체납액보다 크다고 설명했다. 같은 기사는 대법원이 2024년 세금을 내야 한다고 최종 판결한 뒤에도 납부가 없었고, 지난 6월에는 특별 세무조사가 있었다고 전했다.

국세청이 내세운 배경은 올해 1월 꾸린 고액체납 특별대응 TF다. 해외 은닉 재산을 쫓기 위해 여러 나라 국세청과 징수 공조 협약을 넓혔다고 했다. 2025년 호주·인도네시아에 이어 2026년 헝가리, 벨기에, 영국, 라이베리아, 뉴질랜드와 협약을 맺었다. 남은 2,938억 원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들어오는지가 이번 발표의 실제 결과를 가를 것이다.

명단의 대부분은 2억~5억 원 체납자다

2025년 새로 공개된 개인 체납자 6,848명의 체납액 구간별 금액 막대그래프. 2억~5억 원 5,350명 1조 5,872억 원, 100억 원 이상 21명 7,759억 원 등
그림 2. 2025년 신규 공개 개인 체납자의 체납액 구간별 분포 — 자료: 국세청 보도참고자료(2025.12.12) 붙임 2

권 회장 같은 거액 체납자는 명단에서 예외적인 경우다. 2025년 새로 공개된 개인 6,848명 중 5,350명(78.1%)은 체납액이 2억~5억 원이었다. 100억 원이 넘는 사람은 21명(0.3%)뿐이다. 그런데 금액으로 보면 그림이 달라진다.

● 직접 계산

2억~5억 원 구간: 5,350명, 1조 5,872억 원 → 1인 평균 약 2억 9,700만 원
100억 원 이상: 21명, 7,759억 원 → 1인 평균 약 369억 원
21명의 체납액 ÷ 5,350명의 체납액 = 7,759 ÷ 15,872 = 48.9%

21명이 5,350명이 밀린 세금의 절반 가까이를 지고 있다. 1인 평균으로는 124배 차이다. 명단 공개라는 같은 제재를 받지만, 체납의 성격은 크게 다르다. 수억 원대 체납자는 사업 실패 같은 사정이 섞여 있을 수 있다. 수백억 원대 체납은 재산을 해외로 돌리거나 소송으로 오래 버티는 경우가 많아 추적이 따로 필요하다. 국세청이 이번 발표에서 해외 재산 추적과 국제 공조를 앞세운 이유다.

법인은 쏠림이 더 심하다. 2025년 새로 공개된 법인 4,161곳 중 3,241곳(77.9%)이 2억~5억 원 구간이었지만, 체납액 100억 원이 넘는 25곳(0.6%)이 1조 155억 원으로 법인 체납액의 32.6%를 차지했다. 개인의 100억 원 이상 구간 비중 19.1%보다 높다. 앞서 본 시도 계열 세 법인의 체납액 5,203억 원만 해도 법인 전체 3조 1,154억 원의 16.7%다.

서울 거주자는 1인당 체납액이 더 크다

지역과 나이도 공개됐다. 신규 공개 대상 1만 1,009명(곳) 중 6,658명(곳, 60.5%)이 수도권에 살거나 있었고, 이들의 체납액은 5조 2,212억 원(72.7%)이었다. 개인 중에는 50대가 2,353명(34.4%)으로 가장 많았고 60세 이상이 2,336명(34.1%)으로 뒤를 이었다. 30세 미만도 97명 있었다.

눈에 띄는 것은 서울이다. 개인 공개자 중 서울 거주자는 1,094명으로 인원의 16.0%지만, 체납액은 1조 3,061억 원으로 32.1%다. 인원 비중의 두 배다. 가장 많은 사람이 사는 경기는 2,277명(33.3%)에 1조 1,640억 원(28.6%)으로 인원보다 금액 비중이 작다.

● 직접 계산

서울 개인 1인 평균: 1조 3,061억 ÷ 1,094명 = 약 11억 9,400만 원
권 회장(서울 서초구)을 빼면: (1조 3,061억 − 3,938억) ÷ 1,093명 = 약 8억 3,500만 원
경기 개인 1인 평균: 1조 1,640억 ÷ 2,277명 = 약 5억 1,100만 원

권 회장 한 사람을 빼도 서울 거주 체납자의 1인 평균 체납액은 경기의 1.6배다. 거액 체납이 서울에 몰려 있다는 뜻이다. 참고로 일부 보도에 나온 ‘7조 371억 원’은 국세청 원문의 총액 7조 1,815억 원과 다르다. 원문을 기준으로 삼는 편이 맞다. 전년과 비교하면 2024년 9,666명·6조 1,896억 원에서 인원은 13.9%, 금액은 16.0% 늘었다.

명단에는 어떻게 오르나: 1년, 2억 원, 그리고 6개월

고액·상습체납자 명단 공개 절차. 직전 연도 말 기준 1년 넘게 밀린 국세 2억 원 이상, 2월 안내, 6개월 이상 소명 기간과 50% 납부 시 제외, 연말 공개, 출국금지와 감치
그림 3. 고액·상습체납자 명단 공개까지의 절차 — 자료: 국세징수법 제113~115조, 시행령 제103·105조, 국세청 보도참고자료(2025.12.12)

기준은 국세징수법 제114조에 있다. 체납 발생일부터 1년이 지난 국세가 합계 2억 원 이상이면 이름과 체납액 등을 공개할 수 있다. 시행령 제105조는 ‘1년’을 공개하는 해의 직전 연도 12월 31일을 기준으로 거꾸로 센다고 정했다. 올해 12월 나올 2026년 명단이라면 2025년 12월 31일 기준으로 1년이 지난 체납, 곧 2024년 말까지 생긴 체납이 대상이 된다. 공개하는 항목은 이름(법인은 상호와 대표자), 나이와 직업, 주소, 체납 세목과 납부 기한, 체납 요지다.

바로 공개되는 것은 아니다. 2025년의 경우 국세청은 2월에 공개 대상 예정자 1만 2,165명(곳)에게 안내문을 보냈다. 그 뒤 6개월 동안 납부를 독려하고 해명할 기회를 줬다. 이 기간에 체납액의 50% 이상을 내거나 체납액이 2억 원 밑으로 줄면 공개 대상에서 빠진다. 2025년에는 1,156명(곳)이 이렇게 빠졌다. 1만 2,165에서 1,156을 빼면 정확히 공개 인원 1만 1,009가 된다. 소송 등 불복 절차가 진행 중이거나 회생계획에 따라 나눠 내는 중인 경우도 공개하지 않는다.

명단 공개만 있는 것도 아니다. 같은 법 제113조와 시행령 제103조에 따라 5천만 원 이상을 체납하고 재산을 숨길 우려가 있으면 국세청이 출국금지를 요청한다. 명단이 공개된 고액·상습체납자는 그 대상에 들어간다. 제115조는 더 강한 제재인 감치를 정했다. 3번 이상 체납했고 각각 1년이 지났으며 합계 2억 원 이상인 사람이, 낼 능력이 있는데도 정당한 이유 없이 안 내면 법원 결정으로 30일까지 가둘 수 있다. 감치 중에 세금을 내면 바로 풀려난다. 2025년에는 6명에 대해 감치가 의결됐다.

국세청이 공개한 감치 의결 사유 6건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체납을 예상하고 부동산을 미리 배우자에게 증여한 경우, 다른 사람 명의 계좌로 수입을 받은 경우, 주식을 남의 이름으로 맡겨 둔 경우, 배우자 명의로 집을 산 경우, 처제 이름으로 사업을 한 경우, 특수관계 법인 이름으로 빌린 고가 아파트에 산 경우다. 6건 모두 자기 이름이 아닌 가족이나 타인, 관계회사 명의를 썼다. 명단 공개와 감치는 ‘낼 돈이 없는 사람’보다 ‘있는데 숨긴 사람’을 겨냥한 제도라는 점이 사례에서 드러난다.

숨긴 재산을 알면 포상금이 있다

국세청은 2006년부터 은닉재산 신고포상금 제도를 운영한다. 고액·상습체납자가 숨긴 재산을 신고해 세금을 걷는 데 도움을 준 사람에게 최대 30억 원을 준다. 공개된 명단은 국세청 누리집의 ‘정보공개 → 고액·상습체납자 등 명단 공개’에서 볼 수 있다.

앞으로 볼 숫자는 두 가지다. 하나는 권 회장의 남은 2,938억 원이 실제로 들어오는 시점이다. 다른 하나는 올해 12월 나올 2026년 명단이다. 2024년 9,666명에서 2025년 1만 1,009명으로 1,343명 늘었는데, 국세청이 강화한 추적이 이 숫자를 줄일지 지켜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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